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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카이 사르는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작성자 허브누리운영자(ip:)

작성일 2007-11-06

조회 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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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제왕절개 수술은 정상적인 분만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을 때 개복하여 아기를 꺼내는 수술로,

이를 영어로 ‘Caeserian Operation’ 또는 ‘Caeserian
Sec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이 수술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는데...

하나는 기원전 100년쯤 로마의 제왕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 방법으로 출산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고,

둘째는 고대 누마 폼필루스 통치기의 법에 임신 말기의
여성이 사망할 경우 매장 전에 복부를 절개(caesarea:
‘자르다’는 뜻)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그것이랍니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 설 중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러한
방법으로 출산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더욱 널리 인정되고 있답니다.

즉, 제왕절개란 말 그대로 ‘왕이 배를 가르고 나왔다.’는
뜻인데, 로마의 황제가 된 카이사르는 태아 때 유난히
머리가 컸다고 한답니다.

마취제도 변변치 않았던 고대 로마 시절에 카이사르의
어머니는 자연분만에 실패했고, 부득이 배를 갈라
그를 낳은 것이라는 주장이랍니다.

이렇게 태어난 카이사르는 나중에 로마의 황제가 되었는데,
그 때부터 배를 가르고 아이를 낳는 것을 ‘제왕절개’라고
이름 붙이게 됐다는 것이랍니다.

그러나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석가모니의 탄생 설화 중
‘오른편 허리’로 출산했다는 부분을 두고 학자들은
‘개복수술로 석가모니를 낳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데,

석가모니의 두상이 워낙 컸던 까닭에 충분히 추론이
가능한 얘기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답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100년쯤에 태어났고, 석가모니는 기원전 560년쯤
태어났으므로, 이제껏 알려진 제왕절개술의 역사 또한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에 반론을 제기하는데....

제왕절개를 뜻하는 라틴어 sectio caesarea를 독일어로
번역했을 때 '자른다'는 뜻인 caesarea를 로마 시대의 황제였던
시이저(Caesar)로 잘못 본 데서 나온 말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당시의 의학 수준을 미루어 짐작할 때 실제 제왕절개를
시행하였더라면 산모가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런데 시저의 생모는 그가 영국을 침공할 때까지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사실이 아닌 듯하답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제왕절개술의 기록은 1500년
스위스에서 누퍼라는 낙농업자가 자신의 아내에게
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3명이나 되는 산파들이 며칠동안 노력해도 분만에
실패하자 가축의 해부와 분만에 관해 약간의 지식을
갖추었던 그는 과감하게 제왕절개술을 시행하였고
산모와 아이를 모두 살리는 성공을 거두었답니다.

이 아이는 77세까지 살았다고 하며 이 사건은 82년이
지난 뒤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산모가 사망한 다음에 제왕절개로 태아의 출생에
성공한 예는 16세기부터 나타나는데,

산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하는 제왕절개술은
19세기가 되어서야 가능성을 인정 받게 된답니다.

한편 영국의 의사이며 선교사였던 펠킨은 1879년
아프리카 우간다 원주민이 제왕절개를 시행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원주민들은 바나나로 만든 와인을 산모의 마취와 시술자의
손을 소독하는데 사용하고 있었답니다.

또 분만 후에는 자궁을 마사지하여 수축시켰는데 꿰매지는
않았으며, 복부의 절개한 상처는 쇠 바늘로 꿰매고
식물의 뿌리에서 추출한 약제를 발라 소독하였답니다.

시술 후 모친과 신생아는 모두 건강했는데 유럽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이 수술은 아프리카를 미개 하다고 만
여기던 많은 유럽인을 놀라게 하였답니다.

기록에 따르면 1787년과 1876년 사이 프랑스에서 제왕
절개술을 받은 산모 중 살아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옛날 의사들은 자궁을 꿰맬 경우 남는 실 때문에 염증이
생기며 다음 임신 때 자궁이 파열되기 쉽다고 믿어

봉합을 꺼렸던 탓에 많은 산모들이 출혈과 세균감염으로
사망하였으며 결국 제왕절개술은 지혈법과 마취법,
소독법이 모두 발전한 19세기말에야 안전한 수술로
자리잡게 되었답니다.

허브누리(www.herbnuri.co.kr) &(주)지식을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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