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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는 한 때 '해밀턴 항'이라고 불렀을까?

작성자 허브누리(ip:)

작성일 2007-11-12

조회 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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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여수에서 114.7km 떨어진 거문도는 면적 12㎢...

여수와 제주도 중간 지점에 위치한 다도해의 최남단
섬으로 전남 여수시 삼산면이 바로 섬의 주소랍니다.

특히 거문도는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2년 간
점령한 '거문도 사건'의 주무대이기도 하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역사의 현장 첫머리에 있었던 거문도는
중국, 러시아, 일본의 중간 해역에 위치해 있어

19세기 중엽부터 열강의 침입을 견뎌내야 했던 슬픈
역사를 많이 가지고 있는 섬입니다.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영국군 수병 묘지 뿐 아니라
거문리에는 일제 시대 신사참배 터와 일본식 건물이 있어
거문도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는 일이란 어렵지 않은데...

거문도는 서양에서 해밀턴 항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1845년 사마랑(samarang)호를 이끌고 거문도를 탐사한
영국 해군 에드워드 함장이 당시 영국 해군성 차관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으로

이후 거문도가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으로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된답니다.

사마랑호는 제주도에서 거문도 해역까지 약 1개월 간
탐사한 후 사마랑호 탐사 항해기(Narrative of the Voyage
HMS Samarang)를 출판을 하는데..

이후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의
극동 항구 블라디보스톡을 공격하기 위한 중간 기착지로
거문도를 점령할 계획을 세우게 된답니다.

영국 내각은 1885년 거문도 선점 권 확보를 의결하고,
중국 주둔 함대 사령관이었던 윌리엄 도웰 해군 중장에게
거문도를 점령할 것을 명령 한답니다.

3척의 군함과 6백 명의 병력으로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던
거문도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1887년 철수한 후
러시아·영국의 사이에서 중재를 맡았던 중국은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쥐게 되었답니다.

그렇다면 거문도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겨 낳았나요?

고도, 동도, 서도 등 3개 섬으로 이뤄져 있어 삼도라고도
불리는 거문도는 남해안 최고의 절경에 속하는 백도와
서도 수월산에 있는 등대는 거문도의 상징이랍니다.

남해의 쪽빛바다와 어우러져 그림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으며 거문도 등대로 오르는 산책로 또한 일품인데,

거문도는 본래 삼도 혹은 삼산도라 불렸는데, 그런데
청나라 때 제독 정여창이 거문도에 왔다가 조선 대학자
김유와 필담을 나누게 되었답니다.

김유의 학식과 문장력에 감탄한 정여창이 이곳을 '뛰어난
문장가가 있는 섬(巨文島)'이라 이른 것에서 지금 이름이
유래되었답니다.

거문도에 대한 정보 하나 더!

거문도 등대는 흔히 우리나라 최초 등대라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정보랍니다.

거문도 등대는 1905년 세워진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불을 밝힌 등대는 1903년 세워진 팔미도 등대.
 
하지만 거문도 등대 역시 우리나라 등대 역사를 거쳐 온
최고참인 것만은 틀림이 없답니다.

허브누리(www.herbnuri.co.kr) &(주)지식을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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