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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는 '리콴유 주식회사'?

작성자 허브누리(ip:)

작성일 2007-11-22

조회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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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한 뒤 섬나라 싱가포르를
오늘날의 부국으로 이끈 인물이 바로 '리콴유'인데....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리콴유(李光耀)'입니다.

싱가포르는 면적이 692㎢, 서울보다 조금 넓은 정도지만
인구는 460만 명 밖에 안 되지만, 이 조그만 나라의 1인 당
국민소득이 무려 2만7490달러(2005년 기준) 달한답니다.

자원도 없고 인구도 많지 않고 땅도 비좁은 이 나라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은 사람이 바로 리콴유 였답니다. 

리콴유의 기적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싱가포르라는 국가 명칭은 13세기 수마트라의 왕자가
이곳을 지나다 사자를 발견해 싱가푸라(사자의 도시)란
이름이 유래했는데,

중국에서 차와 도자기 등을 수입하던 영국은 19세기
초반에 이르러 이곳을 중계무역 거점으로 삼기 위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답니다.

그 과정에서 중국과 인도에서 노무자들이 건너왔는데...
죄수와 범죄 집단들도 섞여 들어왔답니다.

싱가포르에는 100명밖에 안 되던 인구는 몇 년 새 수만
명으로 늘어나면서 도시는 무법천지가 되어갔답니다.

그리고 1941년 일본군이 이곳을 지배하며 중국인들을
학살했고, 1945년 영국군이 다시 돌아왔을 때는 공산
주의자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유학한 리콴유는 1959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된 후 자원도 없고

물마저 말레이시아에서 사다 먹어야 할 정도의 악조건
속에서 생존을 위해 1960년대 초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하게 된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인종 갈등으로 말레이계가 폭동을
일으키며 말레이시아와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결국 1965년 싱가포르는 연방에서 탈퇴해 ‘원하지 않는
독립’을 하게 된답니다.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싱가포르가 택한 길은 적극적인
해외 투자 유치였답니다.

그리고 공직자 부패를 철저히 척결하고 공무원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어, 현재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이 싱가포르의 발전과 독재는 모두 생존의 위기에서
비롯되었는데, 리콴유의 독재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40년 전 혼란 속에서 번영을 이룩한 그의 공적에는
후한 평가를 내린답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흔히 우스갯소리로 자신들을 ‘리콴유
주식회사의 종업원’이라고 말한답니다.

그런데 이 우스갯소리는 자조적이기 보다는 언뜻 자부심이
묻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리콴유 주식회사라는 배경에는 리콴유가 1959년 이후
50년 가까이 1당 독재체제를 이어왔다는 점과

리콴유가 물러난 뒤 고촉통 전 총리가 그 자리를 물려
받았다가 지금은 리콴유의 아들인 리센룽이 총리를
맡고 있는데, 

여전히 리콴유가 1990년 물러난 뒤 선임장관에 이어
그의 아들이 집권하고 있는 현재에도 고문장관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등 

아직도 그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점으로 굳이 비교
하자면 우리 나라의 흥선대원군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싱가포르항만공사가 싱가포르 물류산업의 핵심이라면
테마섹홀딩스는 금융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알짜배기 국영 기업들의 주인으로....

테마섹의 사장은 리콴유의 며느리(리센룽의 부인) 호칭이며
싱가포르투자청(GIC)의 이사회 의장은 여전히 리콴유가
맡고 있으며,
 
리콴유의 둘째 아들 리센양(리센룽의 동생)은 최근까지
싱가포르텔레콤의 사장을 맡아왔답니다.

이 정도면 ‘리콴유 주식회사’라는 우스갯소리가 공연한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답니다.
허브누리(www.herbnuri.co.kr) &(주)지식을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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