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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 기술을 서양에 전한 고구려 장군

작성자 허브누리(ip:)

작성일 2009-05-25

조회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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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논란은 남아 있지만 종이의 원조는 중국이라는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러나 제지 기술을 서양에 전한 사람이 바로 고구려 출신의
고선지(高仙芝)장군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모른답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진 중국 작가 모옌
(莫言)은 “고선지 장군은 고구려의 후예로 남다른 군사적
업적을 이뤘으며, 세계적으로 나폴레옹과 어깨를 겨루는
장군”이라고 극찬을 했는데...

나폴레옹과 한니발이 겨우 '한 번' 넘은 알프스는 해발 2500m
내외에 불과하지만 고선지가 '수시로' 넘나들었던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은 4500m에 이른다고 이 말이 더욱 실감이 난답니다.

오늘의 주인공 고선지는 우리 겨레 고유의 기개를 떨치면서
중세 동서관계사와 전쟁 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영웅인데,

그는 망국의 비운을 삼키며 이국 땅 당나라에 강제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遺民)의 후예랍니다.

아버지가 변방수비군인 안서군(현 신장위구르 자치주 쿠차에
주둔)의 한 중급장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무예를
연마하며 아버지를 따라 안서군에 들어갔답니다.

그는 용모가 빼어나고 활을 잘 쏘며 말을 잘 탈 뿐만 아니라,
용감하고 성품도 출중해 20대에 벌써 유격장군이 되어 파격적인
승진가도를 달린답니다.

당 장수로 5차례 서역원정 고선지는 11년 동안(740~751년)
다섯 차례나 대군을 이끌고 파미르고원과 힌두쿠시산맥, 톈산산맥
같은 험산준령을 넘나들면서 서역원정을 단행했답니다.

그 중 네 차례는 승전했으나 마지막 한 차례는 패전의 고배를 마셨는데..

전장에서 돌아온 패장은 열혈을 식혀오다가 안록산의 난(755년)이
일어나자 정토군부원수로 임명되어 재기의 계기를 맞았답니다.

하지만 억울한 모함에 걸려 진중에서 참수당함으로써 그야말로
파란만장 한 일생을 마감한답니다.

고선지의 서역원정은 중세 동서관계사에 일대 전기를 마련했는데..

그의 4차에 걸친 연전연승의 서역원정은 승승장구하는 이슬람의
중앙아시아와 중국 동진에 제동을 걸었는가 하면,

그의 최후 일전인 탈라스전투(751년)의 패전은 이슬람이 중앙
아시아에 정착하는 계기를 조성했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탈라스전투는 이슬람군과 당군 사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어난 직접적인 군사충돌로서,

그 결과 파미르고원을 경계로 하여 양대 강국인 이슬람제국과
당제국이 동서에 병립하는 중세의 새 국제질서가 확립되었으며,

이 때 포로가 된 고선지 군 가운데 제지 기술자가 있어 사마르칸드에
제지공장을 세우게 된 것인데....

그 후 바그다드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 공장이 생겨 유럽으로
제지 기술이 전해진 것이며 ‘다마스커스지(紙)’라는 브랜드가
서양에서 이름을 떨친 것은 이곳에서 종이가 흘러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허브누리(www.herbnuri.co.kr) &(주)지식을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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