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 정보

뒤로가기
제목

교수형과 총살형 어떤 것을 택하게 될까

작성자 허브누리(ip:)

작성일 2011-11-24

조회 834

평점 0점  

추천 추천하기

내용

후세인 처형 장면을 본 소년이 그 흉내를 내다 사망한
사고가 있었는데.....

후세인의 처형은 교수형으로 교수형은 밧줄에 목을 옭아매어
죽이는 형벌이랍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5세기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로렌초
메디치'를 암살한 베르나르도의 교수형 광경을 스케치로
남기고 있을 정도 입니다.

개리 길머는 1977년 1월 17일 처형된 사형수인데,

강도 살인죄로 사형 선고를 받고 대기 중이었으나 때 마침 사형제
재검토를 위한 모라토리엄으로 집행이 정지되어 있었습니다.

길머는 변호사를 고용해 자살까지 시도하며 ‘사형 당할 권리’를
요구한 끝에 원하던 대로 총살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유타주의 사형제도에는 수형자가 총살형과 교수형 중에서
방법을 택할 수 있게 돼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길머는 교수형보다 총살형을 택했습니다.

과거 독일 나치도 처형 방법으로 죄인에게 총살형과 교수형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영국의 교수형 역사는 색슨법으로까지 거슬러 오르는데....

색슨법에는, 간음한 여자는 스스로 목을 매야 하며 그 사체는
정부(情夫)의 화장용 장작으로 화장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답니다.

초기의 교수형은 간단히 나무에 매다는 것이 전부였으나 후에는
죄인을 마차에 태워 교수대 밑에서 목을 매단 후 마차를 달리게
하는 잔인한 방법을 썼답니다.
 
보통 절명까지는 15분 정도가 소요돼 수형자의 고통이 매우
컸기 때문에 이 고통도 형벌의 구성요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죄 자는 교수형으로 끝나지 않았는데,

사체에 타일을 발라 쇠사슬을 두르거나 바구니에 넣어 풍화할
때까지 매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1834년까지도 이런 효시 형이 지속되어 영국 여행자들을
섬뜩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법률에 교수 시간이 30분으로 정해져 있어 처형에 실패를
하거나 수형자가 회복되는 경우에는 신의 뜻으로 생각되어 두 번
집행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레이먼드라는 강도는 처형 5시간 후에 깨어나 사면을
받은 일도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점은 당시 영국에서는 7살부터 교수형이 적용됐다는
점인데, 심지어 1833년에는 2펜스짜리 그림을 훔친 9세의
소년이 공개 처형된 일까지 있답니다.

미국에서는 과거 100여 년 동안에 86명을 처형한 교수대가
경매에 붙여져 6만 8천 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답니다.

허브누리(www.herbnuri.co.kr) &(주)지식을 다함께

첨부파일

비밀번호
수정

비밀번호 입력후 수정 혹은 삭제해주세요.

댓글 수정

이름

비밀번호

내용

/ byte

수정 취소

비밀번호

확인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