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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결투 이야기....

작성자 허브누리(ip:)

작성일 2011-01-04

조회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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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원한이나 모욕 따위를 풀기 위하여 일정한 조건과 형식 아래에서
벌이는 싸움이 바로 결투인데....

프랑스 소설가 대 뒤마가 친구와 논쟁을 하다 제비를 뽑아서
진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했는데,

제비뽑기에서 패한 뒤마가 권총을 가지고 서재로 들어간 후
총소리가 들려 친구들이 달려가 보니, 그는 권총을 든 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일이 생겼어. 내가 나 하고 겨뤘는데, 빗나가버렸거든’

미국 부통령 중에도 결투로 상대를 죽인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3대부통령 아론 버 2세로 결투 후 정적 해밀튼이 죽자
피신해 있다가 워싱턴으로 돌아가 임기를 마쳤다고 합니다.

초기의 결투에는 곤봉과 방패가 쓰였으나 이후 검과 권총으로
싸웠고,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계속하거나, 패자는 그 자리에서
처형해버리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권총을 쓰는 결투에도 권총 하나에만 총알을 넣고 제비를 뽑아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었고,

여성이나 노약자는 대리 결투사를 내세우는 일이 많았는데,

프랑스 몽마르트르에서는 2명의 여성이 모래를 채워 넣은
스타킹으로 결투를 한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1371년엔 사람과 개가 결투를 했다는 전설적인 얘기가 있는데...
 
이 개는 몽디디에 영주가 기르던 개로 영주가 살해된 후 이 개가
마케르라는 남자를 보고 짖어대자 샤를 5세가 어전 결투로 재판을
했는데 승자는 개였다고 합니다.

결국 결투에서 마케르는 사형에 처해졌다고 합니다.

앙리 4세 때는 상대가 '용감하다’는 이유만으로 결투 신청을 하는
일이 아주 빈번했는데 결투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한해 평균 무려
235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프로이센과 독일도 결투가 심했던 나라 중 하나였는데.....
 
프로이센에서는 군인들의 결투가 너무 많아 이를 막기 위해
명예재판소가 설치되었고,

독일에는 'Mensur’라는 학생문화가 있어 학생들 간의 결투가
관례화돼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학사회 가입 자격이 결투 경험 10회 이상을 조건으로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 결투가 얼마나 관례화 되어
있었는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진귀한 것으로는 강물에 띄운 통 속에서 칼 하 자루씩만 들고
싸우는 결투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두 사람이 함께 죽었답니다.

결투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법화 됐지만 미국에는 아직도
결투법이 남아 있는 주가 있고, 우르과이에서도 불과 얼마 전인
2006년까지는 합법이었답니다.

결투는 명예회복을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강자의 정의’를
합법화한 데 불과하다는 사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허브눌(www.herbnurico.kr) &(주)지식을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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