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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귀부인들이 부채를 드는 진짜 이유

작성자 허브누리(ip:)

작성일 2011-07-11

조회 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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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8~19세기 프랑스의 귀부인들은 살롱에서 와인을 마시며
잡담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개중에는 얘기를 하다 쉬는 부인들이 있었답니다.

이들이 쉬는 이유는 말이 막혀서가 아니었는데, 계속 수다를 떨다가는
의치가 빠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도중 쉬지 않으면 이가 떨어진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가 모두 빠지면 입 모양이 미워지기 때문에 사교계의 귀부인들은
먹는 것보다 그게 더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걱정을 덜어준 사람이 근대 ‘의치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치과의사 포샤르인데,

말발굽 모양으로 만든 이 틀니는 아랫니의 치열을 싸는 금속 테
안쪽에 나선형의 스프링을 붙여 그 스프링이 윗니를 떠밀어 쉽게
떨어지지 않게 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의치 덕에 입모습은 회복을 할 수 있었으나 그러나 여전히
밖에 나가 식사를 할 수는 없었답니다.

그래서 의치를 넣은 귀부인들은 파티에 나가기 전 집에서
의치를 빼놓고 식사를 한 후 의치를 끼고 파티에 나가 식사는 하지 않고
살롱에서 와인만 마신 것입니다.

이걸 두고 당시 사람들은 ‘살롱의 여자들은 공기(空氣)만 먹고
있다’고 빈정거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사용한 의치의 재료에는 하마나 바다코끼리의 어금니, 상아,
동물의 뼈와 금속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동물의 어금니나 뼈로 만든 의치는 시간이 지나면 부패해 지독한
냄새가 나거나 색이 감노랗게 변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갈 때는 부채가 필수품,
 
부채로 입을 가려 냄새를 막거나 변색한 의치를 가렸는데 귀부인들이
강한 향수를 즐겨 쓴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의치의 재료에는 죽은 사람의 이도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그 수요가 늘자 1815년 워털루전장에서는 전사자의 치아가 여러
곳으로 보내졌고, 남북전쟁 때는 전사자들의 치아가 수거 되어 등급이
매겨진 후 술통에 담겨 영국으로 운송되었다고 합니다.

도기로 구운 의치도 있었는데 이걸 만든 사람은 파리의 약사
데샤트와 치과의사 드 샤망인데,

이것은 잇몸 부분은 분홍색, 이 부분은 흰색으로 구운 일체형이었으나
불에 구울 때 수축해 변형이 되기 때문에 끼면 좀처럼 맞지가 않았답니다.

영국의 유명한 도기회사 웨지우드는 당시 드 샤망과 함께 1만2천 개의
도기 의치를 만들었던 회사랍니다.

허브누리(www.herbnuri.co.kr) &(주)지식을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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